안녕하세요. 토너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한꺼번에 피고 저물었습니다. 남극 3월 평균 기온이 영하 50도인데 올 3월에는 영하 10도까지 치솟았다네요. 지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만장자처럼 쇼핑하라는 테무 카피에 넘어가고 말았어요. 녹음용 마이크 하나, 평생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이어커프를 단지 싸단 이유로 두 개, 크록스 처음 나왔을 때는 으 못생겼어 으 보기 싫어 입꼬리를 축 늘어뜨리던 제가 어느새 귀여운 통통미에 설득되어 월레스와 그로밋 자비츠가 달려있는 4천원짜리 짭퉁 크록스 슬리퍼를 구매했어요. 4월 1일에는 무신사 봄맞이 세일을 놓칠 수 없어 가볍고 몸에 착 감기는 하늘색 바람막이도 샀습니다. 아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박지원의 우물론을 실천하는것이다 자기위안을 해가면서요. 소비는 식욕과는 또다른 즉흥적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하거늘 2024년 4월 저는 소비욕구 제어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발송완료 뜨자마자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테무발 액세서리 발암물질 뉴스. 아아 어리석은 토너. 나처럼 살지 마시오. 

4월 10일 총선이 있었지요. 저는 한 때 정덕이었어요. 아니 정덕이라고 믿었지요. 정덕이라 하면 다이나믹 코리아 정치상황 자체를 즐기는, 응원하는 팀 없는 야빠같은 자세로 달관 도파민을 분출했어야 하는데 오랜 세월 그러지 못했습니다. 과몰입하고 비장했죠. 내가 나라를 구하는 밀알이라는 착각. 모종의 사건으로 저는 모든 일을 뒤로하고 콘텐츠 덕후 외길 인생을 택했습니다. 정치의 ㅈ도 보기 싫었어요. 그치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웨버 네버더레스 총선 정말 재밌잖아요. 4년마다 벌어지는 민주주의 대축제.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땡땡. 사전투표 이틀 본투표 하루 참관인 알바를 했습니다. 하루에 6시간 총 18시간동안 투표소에 앉아 인간공부하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무료할 줄 알았는데 소소한 사건들이 계속 터졌습니다. 덕분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어요. 선거법과 상관없는 투표소 삼라만상, 와 타이어보다 싸다. 

저는 총감미를 좋아해요. 단시간에 많은 것을 선택해야 하고 판단해야 하는 총감한테만 느껴지는 그 정신없음, 통제광, 번뜩이는 안광, 미니 독재자, 협업하는 팀원 노동력을 쥐어짜내면서 인본주의적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어불성설이 좋아요. 그게 아티스트한테만 있는건줄 알았는데요 투표소를 대빵 공무원에게도 총감미가 있더라고요. 대회의실을 누비던 자그마한 체구의 마른 중년여성. 아래 위 검은 착장을 하고 분주하게 이것저것 지배하는 총감 카리스마. 생활밀착형 위엄은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걸까요. 언젠가 그가 무슨무슨 장관 후보로 국회티비 청문회에 나와도 놀라지 않을 자신 있어요. 싸인 받아놓을 걸 그랬나?

아이랑 함께 오는 양육자 투표인이 많았는데 그보다 반려견과 함께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어요. 부럽다. 강아지 나만 없어. 왈왈! 

꼬부랑 할머니들, 호호 할아버지들, 거동이 불편하신 장애인분들, 활동지원사 도움 받아 소중한 한표 행사하시는데 20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는 많이 못봤어요. 앞으로 있을 어떤 투표라도 꼭 참여하세요. 정치가 썩었다고 외면할수록 내 이야기 국회에 가져갈 정치인이 더 빨리 사라집니다. 아니 무엇보다 투표 진짜 재밌잖아요. 이 정도로 질서 정연하게 국가 행사 치르는 나라 세계에 몇 없을걸요? 저 삼일동안 민주시민 뽕 풀충전 했어요. 투표 너무 좋아. 맨날 투표하면 좋겠어.  

이미스 볼캡이랑 크록스 진짜 많이 쓰시고 신으시더라고요. 짭퉁 크록스 테무 주문 사실 사전투표 참관하면서 했습니다. 자꾸 보다보니 귀여워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전투표 이틀 중 하루, 운 좋게도 선관위랑 우체국으로 투표함 옮기는 일에도 참여했습니다. 추가수당 2만원. 봉고차에 경찰관 두 분과 함께 탔는데 너무 신나더라고요. 타요타요 경찰차를 좋아하는 어린이 마음이 지금 나와 같을까 경찰 무전기 암어 알아듣고 싶다 민중의 지팡이 내 삶을 지켜줘요 속으로 오만가지 호들갑을 떨었지만 겉으론 티나지 않게 조심했습니다. 관외 투표함은 우체국으로 관내 투표함은 선관위로 갑니다. 선관위 빌딩 앞에 경찰수 만큼이나 많은 민주시민들이 있었어요. 하나같이 셀카봉을 들고 촬영하고 계셨는데 봉고차에서 투표함 내릴 때 유독 집중적으로 핸드폰이 움직이더라고요. 어느 채널인지 모르겠지만 저도 중계됐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셀럽의 삶인가 지랄도 잠깐.

총선 이야기로 편지를 이만큼 길게 쓰다니 죄송해요. 다음엔 재밌는 편지 쓸게요. 예를 들면 이마트 주식 수익률 마이너스 35퍼 찍은 것이라든지, 송길영 시대예보 때문에 유튜브 계정 새로 판 것이라든지, 요새 젊은이들의 미덕은 도파민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자체에 있다든지 하는 이야기들 말이에요.

건강하세요. 또 쓸게요. 

아참. 지난번 말씀드렸던 인천시민대학 도예클래스 수강신청은 늦잠을 쳐 자느라 광탈했다는 점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