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토너입니다.

영화 상영 시작 전까지 여유가 있어 구석에 앉아 핸드폰 하고 있었어요. 왼쪽에 거대한 그림자가 생기더니 안녕하세요 낯선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반사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시나리오 준비 중인데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사람들 인터뷰를 하고 있다고 혹시 시간 되시면 인터뷰 가능하시냐는 질문에 와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필이면 그 사람 머리 뒤에 강한 조명이 후광처럼 비쳐 눈동자 초점상태를 놓친 게 저의 패착이었겠지요. 옆에 앉아 제대로 눈동자를 마주 한지 3초 만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이비 계략에 걸려들었구나. 아 이것이 말로만 듣던 마음공부구나.

그래도 어떻게 바로 아 이거 사이비죠 가세요 대화 안 합니다 해요. 제사 지내러 가자거나 심리테스트하자고 하면 그때 거절하고 돌려보내야겠다 마음먹었죠.

대화는 의외로 재밌었어요. 그 사람은 제 불행의 틈을 파고들 날카로운 칼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전도 초짜였던 거 같아요. 살살 구슬리는 기술이 전무했어요. 정신을 차려보면 대화의 주도권을 제가 갖고 있어 혼란스러워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분의 질문에 두루뭉술 그러나 날쌘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하며 옜다 그래서 네 불행은 무엇이냐 받아쳤습니다. 돌이켜보니 그 무딘 칼싸움을 즐겼던 거 같아요. 그분은 제가 손바닥 위에 있지 않다는 걸 깨달은 즉시 다음에 시나리오 막히면 연락드려도 될까요 형식적인 마무리 질문을 했고 제 거절로 짧은 대화는 끝이 났습니다.

찝찝함 즐거움 반반으로 영화관람을 시작했고 영화는 무척 재밌었어요. 여기저기서 꽝 꽝 터지는 속 시원한 액션 영화를 보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떠올라 괴롭다가도 제이슨 스타뎀이 제이슨 본 뺨치는 아름다운 미소로 나를 홀려 까먹기를 반복했어요.

영화는 영화고 집에 돌아오면서 저는 사이비 청년과 나눈 대화를 복기했습니다. 내가 구석진 곳에 혼자 앉아있을 때 어떤 분위기를 풍기는가 고민도 함께요. 헷갈리는 부분, 열받는 부분이 있어 판단력 좋은 친구에게 물어봤고 원하는 대답을 얻었어요.

저는 콘텐츠의 신은 발행이라 믿고요 고민의 신은 망각이라 믿어요. 신경 쓰지 않고 내 쪼대로 가는 것이 많은 부분을 해결해 줍니다. 열등감은 취약함이 되더라고요. 저는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취약함을 발견하는 족족 밀어내려고 노력합니다. 사이비 청년과의 대화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니 오히려 고맙네요. 이것이 종.. 교...?

매주 일요일 밤에 보내던 토너편지 발송을 비정기적으로 바꾸려고 해요. 블로그보다 내밀한 속살같은 편지를 쓰고 싶은데 그러는 동시 재미있게 쓰는 것이 조금 버겁더라고요. 능력 부족입니다. 시행착오예요. 죄송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