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토너입니다.
첫 번째 편지를 어떤 내용으로 채울까 고민하다가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수원화성 다녀오기>를 끝내고 여행기를 전해드리자 마음먹었어요. 평생 미뤄온 일을 토너편지 이유 삼아 해치운다면 구독자분도 저도 뿌듯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외부 일정 마치고 행궁동으로 향해야겠다 정한 날, 오전 내내 폭염 안내 문자가 왔습니다. 급기야 폭염경보가 뜨더군요. 자외선 차단 잘 되는 우양산을 써도 땅 위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막을 수 없었어요. 얼음 잔뜩 든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아이고 죽겠다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토너편지 첫 번째 잘 쓰고 싶어 욕심내다가 병 나겄다 하던 대로 하자 가볍게 가자 이렇게 또 한 번 수원화성행을 미뤘습니다.
그러면 뭘로 포문을 여느냐. 이것을 또 고민하였는데요. 제 편지에 뭐 얼마나 대단한 콘텐츠를 기대하시겠어요. 쟤가 오늘은 또 무슨 실없는 소릴 열심히 포장하나 까부는 문장 하나에 미소 한 번 지으시면 그만 아니겠나요. 하던 대로 하겠습니다. (누가 뭐랬냐고)
이번 주 큰 이슈는 두 개였습니다. 고3 때 몸무게를 능가했음을 저울 위 숫자로 확인한 것. 뉴진스 쿨위드유 뮤직비디오 보고 조금 울은 것.
고3 때 저는 일 년 동안 약 20킬로 정도가 쪘었어요. 고3 2학기는 통째로 기억이 안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던 때입니다. 공부력은 궁뎅이 무게에서 나온다는 말을 실천했고 대학 가면 자연스럽게 빠진다는 말을 아주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어른들은 구라도 참 학구적으로 친다는 걸 스무살에 깨달았을 뿐이죠.
대학 진학하고 이차 저차 원하는 몸무게와 쉐입을 갖기까지 약 4,5년이 걸렸습니다. 마른 몸을 꽤 오래 유지하고 살았는데 언젠가부턴 그냥 먹고 싶은 거 먹고사는 게 행복이겠더라고요. 탄탄한 몸을 가진 건강인이기만 하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에 고삐가 풀렸고 그렇게 살아온 지 10년이 훨씬 넘었네요. 중간중간 옷이 맞지 않아 간헐적 단식도 해보고 다이어트 약도 먹어봤지만 그때뿐 타고난 체형으로 돌아가는 일은 매우 쉬웠습니다.
남이 찍어준 내 사진을 보며 어이구 난 정말 사진빨이 안 받는구나 후후 웃으며 넘겼습니다. 저 정도로 살이 붙었을 리 없다 현대사진 기술의 왜곡각을 온몸으로 받는다고 스스로 기꺼이 착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집에 체중계가 생겼습니다. 외면했습니다. 알지만 알고 싶지 않았어요. 가족 구성원들이 하루가 머다하고 저울에 오르며 이러쿵저러쿵 자신의 무게에 대해 말을 할 때도 저는 관심 없었습니다.
왜 갑자기 진실을 직면할 용기가 생겼는지 혼자 멍하니 커피를 마시다 스마트 체중계에 오른 것이 이번 주 화요일입니다. 어우씨. 평생 처음 보는 숫자더라고요. 많이 놀랐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슬슬 살을 빼볼까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전혀요. 저녁 8시 이후에 먹는 건 참아보자 정도로 타협했습니다. 굉장히 대단한 결심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토요일 지금까지는 그 결심 잘 지키고 있습니다. 아닌가. 어젯밤 11시에 아이스크림을 먹었던가.
뉴진스 쿨위드유 뮤직비디오 보셨나요? 저는 보고 조금 울었습니다. 뻔한 이야기를 뻔한 흐름으로 끌고 가면서도 제 감정을 마구 뒤집더라고요. 정호연의 힘이었을까요. 감독 신우석의 힘이었을까요. 쿨위드유 뮤직비디오 사이드 에이와 비 모두를 연달아 시청하고 신우석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였습니다(양조위 백발 분장은 마음에 안 들었어요).
쿨위드유 노래가 제 취향이라 이미 좋았는데 큐피드가, 다섯명의 요정이, 하나도 행복해 보이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 못해 시리더라고요. 남들의 사랑을 이어주는 검은 날개의 사랑신이 그렇게도 무미건조하다니 권태롭다니 그 어떤 생기도 없다니 불길수집가 토너 좋아서 숨넘어가는 그 자체 아닙니까. 사랑 때문에 신이라는 자기를 버리고 한낱 인간이 된 큐피드는 잠깐의 활기를 띱니다. 손잡고 거리를 걷는 일상에 비로소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탈한 신을 찾아 응징하는 신계의 경찰 양조위가 등장해 눈빛 한 번 다른 곳에 쏘기 전까지는 말이죠. 날 향해 걸어오며 활짝 웃던 연인은 내게 걸어오던 한 발자국마다 사랑을 덜어내 내 가장 가까이에서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변심을 하고 맙니다. 아. 너무나 마음이 아파요. 그러나 큐피드는 슬퍼할 뿐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다음 자신이 펼쳐나갈 삶을 향해 뚜벅뚜벅 힘차게 걸어나가며 뮤직비디오 에이와 비는 모두 끝이 납니다.
금붕어 지느러미 같기도 요정의 날개 같기도 그림자이기도 슬픔이기도 한 정호연의 나풀대는 검은 옷이 작품 톤을 한 번에 잡았습니다. 아름다우나 나를 옥죄는 속박의 옷을 벗고 자유의 비를 맞으며 시원하게 웃는 1편 마지막 장면에 눈물이 차오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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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새벽이나 월요일 출근길에 읽으시겠죠? 여러분의 시간을 기분 좋게 뺏는 첫 번째 편지였길 바랍니다. 저는 내일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보러 국립중앙박물관에 갑니다. 재밌으면 좋겠네요.
이번 한 주도 잘 지내봅시다! 파이팅!